‘모두를 관심있게 지켜보기’ 혹은 ‘일부를 포기하기’

‘관심있게 지켜보기’ 참 쉬운 말이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연구실은 규모가 좀 있다보니 매 학기 1~6명 정도의 신입생이 들어온다. 그 중에는 우리 전공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 전공에 대해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 신입생들보다 조금 더 오래 공부를 한 사람이고, 같은 연구실에서 이들을 이끌어줘야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보니 이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반 지식을 쌓아주는 역할, 그리고 이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내용들에 대해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기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비젼과 이 사람들이 보는 비젼은 다르다.

누구나 연구 혹은 자신의 지식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있어 석사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좀 더 높은 연봉으로 시작하기 위해, 좀 더 큰 기업에서 시작하기 위해 석/박사로 진학을 한다. 일부는 취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석/박사로 진학을 한다. 그리고 또 일부는 학사 학위만으로 회사에서의 진급에 한계를 느끼고 석/박사로 진학을 한다. 그 외의 아주 소수만이 정말 연구가 하고 싶어서 진학을 한다.

그 중 정말 연구가 하고 싶어서, 공부가 재밌어서 진학을 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이끌어줄 때의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내가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 중 이해를 못했던것 그리고 그와 관련있는 것들을 직접 찾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말했던 것 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이해한 20%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역할은 무엇일까? 20%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바라보는 비젼을 강요하고, 내가 원하는 정도까지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 기다리는 것?

아니면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는 것?

예전에 써놨던 글에서 써놨다시피 이미 확립되어 있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수동적으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된다. 스스로 ‘Why?’라는 질문을 던져야하고, 그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능동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능동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모두를 관심있게 지켜보기. 다시 말하지만 말은 쉽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노력에 비해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와주는 사람들도 너무나 소수이다.

일부를 포기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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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모두를 관심있게 지켜보기’ 혹은 ‘일부를 포기하기’”

  1. 아무리 휼륭한 선생이라도 지식을 전달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알고자 하는 열정을 심어줄 수 있을뿐이다.
    – 아마도.. 톨스토이-

  2. 어느샌가 부터 인간으로 추구해야할 당연한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가는것 같아요.

    공부는 평생을 해야하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근원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사람을 괴짜나 성인취급하는 느낌이에요. 무슨 도딱는것도 아니고
    인간으로 추구해야할 당연한게 도딱는게 되는지..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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