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세미나…

난 우리 연구실 세미나가 싫다. 사실 나 혼자 주제가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 연구실 세미나는 나에게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사실 세미나라고 하면 내가 읽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자신이 아는 내용을 더해줌을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새 세미나 분위기는 발표자를 피발표자들이 쪼는 분위기라서 싫다.

사실 발표자들이 평소에 공부하던 내용을 바탕으로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논문을 뽑아 발표한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진 않았을텐데, 어느 순간 자기 차례가 다가오면 논문을 찾고, 그걸 단시간 내에 읽은 다음 발표를 하려고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걸 남에게 설명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이걸 알다보니 쪼는 분위기로 가는 것 같긴 하다.

게다가 발표를 영어(?)로 진행하다 보니 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석사 이하는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 옵션이긴 하지만 대부분 영어로 진행을 하려고 한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영어를 못하다 보니 설명하기 곤란하다 싶으면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난 그게 싫어서 거의 한국말로 했었다.) 또 말에 자신이 없으니 발표자료가 지저분해진다.

프레젠테이션 파일에는 아웃라인 만이 존재하고, 발표자는 이 아웃라인에 살을 붙여 설명을 해야한다. 하지만 말에 자신이 없다보니 발표자료에 많은 내용을 써놓고 살을 조금만 (혹은 전혀 안) 붙이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내용을 읽는 정도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버린다.

유창한 발음도 아니고, 더듬더듬 읽는 영어가 귀에 들어올리 없다. 그러다보니 발표하는 걸 듣기 보다 그냥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읽게 되는데, 이렇게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구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나 싶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 명씩 논문 요약본을 전체 메일로 보내고, 관심 있는 사람은 그 요약본을 읽는 게 낫지…

얼마전 다른 친구가 발표를 했고, 별 이유 없이 특정 픽셀들을 이용하지 않는 게 보여서 그건 왜 이용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 질문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지 횡설수설하다 끝나버렸고, 발표가 끝난 다음 자기 동기들 사이에서 ‘내가 이 논문을 썼나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정도 얘기를 하는게 들려왔다.

난 쪼고 싶어서 뭐라고 한 게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혹은 그것들을 활용해보면 어떨지에 대해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저 자신이 준비한 자료가 무결함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얼마 전 읽은 글이 생각난다.

모 개발자가 몇 달에 걸쳐 개발한 것을 발표하고 의견 수렴을 하는 자리.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여러 사람이 왔다. 발표는 순탄했다. 마지막 질문 답변 시간. “저건 왜 저렇게 하셨나요? 그렇게 해서 성능이 제대로 나오겠어요?” 개발자가 보기엔 질문하는 사람이 멍청해 보인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 만들었는데 설마 그런 걸 고려 안 했으리라고. “아뇨, 당연히 나옵니다.” 또 다른 질문. “아까 그 부분은 이렇게 개선하면 어떨까요?” 이젠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한다. “아뇨, 지금 방식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좀 더 본격적인 비판도 나온다. “처음부터 개발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가요?” 눈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온다. 한 30분쯤 흘렀을까? 그 개발자는 나름 모든 질문에 선방했다고 생각하던 차, 누군가 손을 들고 말한다. “우리는 도대체 왜 불렀습니까?”

누가 문제였을까? 우선 개발자는 이제껏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이런 자리에는 피드백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 작품이, 그리고 나 자신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믿어왔다.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도 낮았을 것이다. 통상 이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비판에 굉장히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수일수록 사소한 시비에 말리지 않는다. 또한 참관자들 입장에서도 고칠 점이 있다. 좀 더 긍정적이고 친근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지 못했다. 이런 자리는 발표자와 제품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한다.

from ‘IBM Developerworks – 저자 워크숍

컨퍼런스나 세미나나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한 것이 훌륭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만이 아니라 짧은 시간동안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개선할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준비한 내용이 무결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을 경우 토론을 통해 바로 잡고, 발표했던 내용을 보완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난 연구실에 방관자 입장이라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고 뭐라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연구실 세미나 시간마다 기분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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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연구실 세미나…”

  1. 발췌한 글을 읽다보니, 그렇군요.
    발표자도 경청하는 사람도 모두가 참관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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