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

며칠있으면 공식적으로 석사 학위를 수여 받지만 박사 진학이 확정된 상태라 그다지 감흥이 오진 않는다. 솔직한 심정으로 요번 학기에 난 취업 쪽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실제로 교수님께 ‘박사 진학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고, 며칠 간 교수님께 회유를 당해야 했다.

그렇다고 입사원서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LG, 팬택앤큐리텔은 서류 탈락! 삼성은 면접 불참! NHN은 Pre-test와 컨퍼런스(SITIS 08) 날짜가 겹친 관계로 포기! 다음은 최종 면접 날짜와 SITIS 08이 겹치는 불운이 발생! 다행히 면접 날짜를 조정하는데 성공했지만 결과는 최종 탈락 -_-! 그나마 탈락되었다는 메일을 받지 못해서 결과를 직접 전화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상심은 더 컸었다.

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동기 중 유일하게 연구실에 남게 되었다. 사실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은 대부분 회사 생활을 하고 있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서 부럽다. 연구실에서 어느 정도 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남들 보기엔 그저 학생일 뿐!

어쨌든 한국에서 석사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박사를 한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대학원 교과 과정은 학사 때보다 알차지 못하다. 물론 의욕이 넘치는 교수님 덕분에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빡빡한 수업도 있겠지만 내가 들었던 수업 대부분은 그저 수박 겉핧기 식이었고, 이미 그런 상황을 겪어본 학생들은 ‘~특론’ 처럼 출석만 채우면 쉽게 학점을 딸 수 있는 과목을 선호하게 된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내 블로그에 쓰기에는 조금 껄끄러운게 있어서 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로 들어야 하는 학점 수는 정해져 있는데, 예전 SITIS에서 만났던 레이첼(싱가폴에서 일본으로 유학 중)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은 코스웍이 의무가 아니라고 한다. 영국 쪽 시스템을 답습해서 그렇다는데 전공이 어느정도 세분화 되어 있고, 이미 어느정도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석박들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훨씬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코스웍의 질에 상관없이 코스웍을 따라가면서 시간을 쪼게 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일본과 같은 시스템이 더 좋을 것 같다. 어영부영 수업을 듣다보면 정말 한 주, 한 학기는 금새 가버린다. 나같은 경우는 2학기 만에 수업을 모두 마치고 나머지 1년 간은 연구에 매달렸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연구 주제를 잡는데까지 3학기가 흘렀고, 마지막 한 학기 동안 논문 5편을 쓸 수 있었다. 만약 3, 4 학기에도 수업을 들어야 했다면 이런 성과는 올릴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 연구실 분위기는 이상하게 강제성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연구실마다 분위기는 많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연구실에 의무 상주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만약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그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바쁘다거나 혹은 소그룹으로 서로 함께 연구를 하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연구실에 있기를 바란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할게 없더라도) 연구실에 나와 있기를 바라는 점은 나로써는 참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연구실에 오든 말든 상관을 안하더라도 공부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알아서 공부를 하고, 연구실에 강제로 있게 해보아도 자기가 공부에 뜻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어짜피 박사 졸업을 위해선 SCI 논문 두 편 이상이 필요하고, 심사가 길고 까다로운 SCI 논문의 특성상 자기가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쉽게 실적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구지 저렇게 강제성을 둬야하나 모르겠다. 난 순진한 엔지니어라 ‘각각의 개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이기적으로 생활할 경우 세상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거’라는 믿음을 아직 잃지 않고 있다.

뭐 어쨌든 나는 좀 자유로운 연구실에 있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혼자서* 잘 하고 있다. 요새들어 그 자유로움을 억압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나고는 있어서 좀 불안하긴 하지만…

내가 느끼는 우리 연구실은 꼭 정글 같다. 물어뜯기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석박을 할 때 좋은 점이 있다. 우선 BK(Brain Korea)21을 들 수 있는데, 해외 컨퍼런스에 논문을 내게 되면 여비 + 숙박비 + 식비 + 비행기값 + 등록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 영어로 발표할 기회, 또 새로운 기술들을 발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학회 등록비가 대체로 50~100만원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컨퍼런스 한 회당 지원받는 돈이 300만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오며 BK21선정 연구실의 경우 다달이 50만원(석사)/90만원(박사)씩 월급이 지급된다. 일년에 해외 컨퍼런스에 한 회 정도 참석한다고 치면 약 천만원 가량(300 + 50*12)을 지원받는다는 얘기가 된다. (박사라면 1,400 정도) 게다가 산학 협력을 목적으로 영어 논문 교정, 특허 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이 존재하므로 자신이 열심히 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외국으로 유학갈 경우에 비해 학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돕는 대신 학비는 교수님이 내주시는 경우도 많다. (불행히도 난 등록금을 내 돈으로 내야 했다. 한양대 교수님들은 석사 등록금에는 관심이 없으신 듯.) 그리고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경우 박사 과정에 올라가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통과하면 박사 수료 후 (수료란 코스웍이 끝남을 의미하므로 대게 박사 2년차 이후) 3년간 연구실에서 생활을 하는 것으로 군대를 대체할 수 있다. 국내 대학원 중 유일하게 카이스트는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면제 받는다. 웃긴건 ICU와 카이스트가 통합되었지만 카이스트로 입학한 경우만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면제받는다고 들었다. 올해가 첫 해이니 진위여부는 조금 기다리면 알 수 있을 듯…

우리 연구실에는 외국인 학생이 4명 있었다. 중국인 포닥(Post Doctor, 박사후 과정)은 조용히 혼자 논문쓰다 자기 나라로 돌아갔고, 파키스탄 친구 한 명은 어영부영 있다가 졸업 논문을 통과받자마자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유학을 갔어도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에서 왔던 알리는 독특한 체취를 풍겼고, 다들 친하게 지내려하질 않았었다. 동남아인 느낌이다보니 이런 현상이 더 심했던 거 같은데, 만약 백인들의 나라에 내가 유학을 갔다면 동일한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까? 마늘 냄새 풍기는 애이시안(Asian) 꼬맹이 정도? 물론 알리가 우리와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던 점도 있었고, 2년동안 한국에 있었으면서도 제대로된 한국 문장 하나 구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알리를 보며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중국인 포닥 팡용은 연구실 사람들과 인사도 거의 없었고, 연구실 세미나에도 참석하질 않을 정도였으니 그냥 돈벌러왔다 간 느낌이다. 참고로 대게 포닥 정도 되면 월급으로 250정도를 받는다. (학교랑 상관없이 교수님과 계약) 중국과 한국의 월급 수준 차이를 생각해보면 대박 치고 갔다고 할 수 있을 듯! 그러면서 연구비를 지원받아서 해외 컨퍼런스도 한두번 갔다왔으니 정말 지 챙길건 다 챙겨먹고 간 것 같다.

뭐 진짜 영어권 학생이 아니더라도 파키스탄 애들은 대학 수업을 영어로 해서 그런지 우리보단 영어를 좀 더 잘하는 것 같다. 실제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더라도 외국인 학생들이 있어서 영어로 대화할 일이 있다는 점은 플러스가 된다. 영어는 문장을 만들고, 그걸 통해 얘기를 하고, 잘못 표현했던 부분을 개선해나가면서 느는 것 같다. 빠르게 말을 만들어내다보면 잘못된 어순, 잘못된 문장 패턴이 나오지만 말을 질러놓고 생각을 하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 이건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는 기억이 많아질 수록 비슷한 실수를 덜하게 되므로 말을 자주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최근 한국 대학원에는 외국 학생들이 간간히 들어오고 있으므로 한국에서도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외국에서라면 우리가 놀아달라고 달라붙어야겠지만 한국에서는 우리가 인심쓰면서 놀아주면 된다.

뭐 정말 어학에 관심이 많이 있다면 주말마다 외국인들과 파티를 하는 모임에 나가보는 것도 재밌을 듯…

어쨌거나 장황하게 썼는데, 국내 대학원으로 진학하는게 꼭 나쁘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절대 내가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는 점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다. -_-a

덧: 박사 과정 학생을 ph.d student, 박사 수료 학생을 ph.d candidate라고 얘기합니다. ph.d에서 d가 무엇으 약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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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thoughts on “국내에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

  1. 좋은 얘기 듣고 갑니다.
    학부생으로서 최근 관심이 많이 가던 이야기였는데,
    장점 위주로 얘길해 주시니 기대가 부푸네요^^;
    단점은 저기 앉은 선배와 상의를….

    1. 담부턴 글이 맘에 들면 아래 쪽 블로거 뉴스 추천 링크 좀 꾹 눌러주세요 ㅠ.ㅠ 사실 연구실 생활하면서 젤 짜증나는 건 연구실 내 정치죠.

  2. 이글루 사이언스 밸리에서보고왔어요 ㅎㅎ Ph.d .. Philosophy doctorate..? master degree는 왜 MS라고 부르는지도 궁금하네요 ㅎㅎ

    1. Ph.d 는 Philosophy of Degree (철학의 경지!) M.S는 Master Science (과학의 달인) 의 약자입니다. 첨에 저도 ph.d 의 d를 doctor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

  3.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대학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움이 되네요.

  4. 이야, 정태영 부럽다. 학사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나로선 박사 그러면 왠지 모를 경외심이!
    정,박 후보생 마냥 부럽!

  5. 음.. 쿨럭; 박사하시는군요. 뭐 다 잘되겠죵 +_+;;

    그나저나;;;

    코코아 프로그래밍 책 리뷰는 언제쯤!?!?!?! -ㅇ-; =3=33 답글은 잘 안달지만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후후; 포스팅이 쏟아지는데, 코코아얘긴..흑흑흑.. ㅠ_ㅠ

    1. 안그래도 얼렁 리뷰해줘야할텐데 하고 생각 중인데, 요번주까지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아직 다 못읽었어 ㅠ.ㅠ 얼렁 리뷰해주께!!

  6. 요즘 이만저만의 고민… 연구실의 지도교수님들이나 박사형들이 박사오라거 하는데…

    아 이런 저런 고민이 머리아프네요 … 가서 열심히 해도 좋은성과낼 자신도 없고 ..

  7. 일단 제가 볼땐 이 글의 제목부터 바꾸셔야 할것 같군요….”국내 어느학교 어느과 대학원에 진학한다는것…” 이라구요. 국내의 모든 대학원을 다녀 보시지 않은상태에서 이런 류의 일반화를 하신다는건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커 보입니다.
    저는 국내에서 석사 마치고 박사 코스웍 마친상태입니다.(일반적으로 얘기하는 sky중 한 학교입니다)
    님이 어느 학교, 어느과에 몸담고 계신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석박 코스웍들을 때에는 어영부영 할 수 있었던 수업이 전무했었거든요. 오히려 학부때처럼 이수해야할 과목이 많지않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죠…특히 님이 출석만하면 학점이 나왔다는 특론 류의 수업이 오히려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한 학기에 세과목 수강하면 한과목에 최소 일주일에 12시간은 투자해야 겨우 따라가고, 수업시간에 디베이트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남편따라 미국에와서 여기 대학원에 다시 진학할 예정입니다. 님이 국내대학원 진학시의 유리한 점이라고 쓰신 것들도 사실 국내외 대부분의 대학원생이라면 받을 수있는 혜택인것 같군요. 여기 와서 보니 이곳 대학원 학생들도 컨퍼런스 참가시 지원을 받고있는데 국내대학원만의 혜택이라고 할 수는 없는거 같구요. 또 여기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달라붙어야한다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주로 디파트먼트 자체에서 하는 파티에 참석해 자연스럽게 어울리거나 친한 사람들끼리 점심도 먹고 같이 축구도 보고 하죠… 어학연수때 생각하시면 안될듯…
    이런 글이 자꾸 인터넷에 돌고있으니 정직하고 성실히, 그리고 빡세게 코스웍하고 논문쓰고 졸업하는 국내 석박들이 싸잡아서 욕먹는 겁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글을 쓰실때에는 혹시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지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하네요.

    1. 네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SKY 비슷한 학교 졸업했는데요.

      대학원에 다니셨으면 전공 및 관심분야가 학부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좁혀지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교수님들 별로 연구 분야가 굉장히 다르고, (물론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는 전공들이 있을 수 있겠죠.) 대학원 수업은 교수님들의 전공 분야와 관련된 분야로 개설되죠.

      저희 학교에서 제 전공분야와 관련 혹은 비슷한 연구를 하시는 교수님이 (저희 교수님 포함) 3분 계셨고, 한 분당 수업이 1개씩 정도 개설되었습니다.

      석사 졸업학점을 채우려면 8과목은 들어야 하는데, 제 전공과 관련된 수업은 1년에 크게 잡아 6개였다는거죠.

      저도 코스웍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했고, 과제/논문 리뷰 등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했던 것은 사실인데요. 그게 졸업을 위한 것이였지 제 ego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죠. ㅎㅎ 어쨌든 학부/석사/박사를 다녔던 학교들에 대해서 그렇게 교수님들이 대학원 수업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대학원 수업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ego가 높아질 수 있는 케이스가 많을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요. 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학과가 작고, 그 쪽에서 교수진들이 빠방하면서 연구 트랜드가 서로 다 비슷하다면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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